이탈리아 신부가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차린 위로의 한 끼
  • 김하종
  • 2018 APA 수상자 [올해의 필란트로피스트 상] 부문
  • 2019.11.05
“저는 사제복 대신 앞치마를 둘렀을 때, 가장 낮은 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잘 보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길 위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26년째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APA 상 받고 와서도 똑같이 일했다. 안나의 집 와서 식사 준비하고, 같이 밥 먹고, 뒷정리하고. ‘신부님 참 변함없이 살아왔다’는 얘기 듣고 싶다.” 아침 5시 기상, 아침 기도, 식사 준비, 뒷정리, 행정일, 오후 5시 아지트 활동. 그는 매일 반복 되는 자신의 일상을 “인간으로는 참 재미없는 인생”이라고 평가했다. 오후 2시, 성남 안나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한참 급식소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신부의 상징인 사제복 대신 평상복을 입은 그의 모습에서 인생의 재미보다 찾기 힘든 인생의 ‘의미’가 담겨있는 듯 했다. “사실 상을 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되게 놀랐다. 나는 그냥 주방일 하는 사람이다. 전혀 훌륭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매일 주방에서 일한다.”

APA 수상은 저한테 어떤 증표 같았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이 생활이 의미가 있을까’ 싶을 때도 많다. 가는 길이 맞다고 인정받은 기분이다. “예수님께서 ‘잘하고 있다’고 해주신 것 같다.” 다행히 후원도 많이 늘었다. 안나의 집은 정부보조금 40%, 후원금 60%으로 운영된다. APA 수상 이후 후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믿을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긴 덕분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후원금만으로 건물을 지었다. 곧 계약이 만료되는 안나의 집이 이사 갈 보금자리다.
원동력은 ‘목표’가 아닌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사랑’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30살에 사제가 될 때까지 이탈리아에서 살았다. 학부 시절 동양철학을 배웠던 그에게 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가톨릭 신자들이 생겼던 한국이란 나라는 꽤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1991년, ‘달동네’였던 성남에 정착하게 됐다.
김 신부는 “달동네를 보는데,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는 느낌이 왔다”고 상기했다. 그렇게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인 ‘평화의 집’을 운영했다. 저녁에는 공부도 가르쳤다. ‘영어를 가르쳐 달라’던 아이가 한 명, 두 명 늘어 1994년에는 분당 영구임대아파트에 아예 공부방도 열었다. 그러다
1997년 IMF가 터졌다.

“그때 노숙자들이 진짜 많았다. 근데 밥 주는 곳이 없었다. 독거노인 급식소는 원칙적으로 못 들어가니까. 서울역에서 노숙자들 밥 주긴 했다. 근데 전혀 인간답지 않았다. 냉면 그릇에 밥, 국, 반찬... 아저씨들 창피해서 벽 바라보면서 숨어서 먹고 그랬다. 앉지도 못하고, 밖에서.”
그렇게 그는 6년 간 운영한 평화의 집을 정리하고 노숙인들을 위한 급식소인 ‘안나의 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결정이었다. 김 신부는 “정말 급한 상황이고,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그저 인간답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결정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 결정에 목적은 없었다.

그저 위대한 존재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밖에는.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나라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나? 예수님이 나한테 맡기신 사랑하는 일, 그걸 실천하는 거다.”
받아봐야 줄 수 있다 … 무엇이든
안나의 집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한 달에 한번 일찍 일어나 샌드위치와 우유를 챙겨 노숙인을 직접 방문하러 다녔다. ‘가출’이라는 단어도 몰랐던 때, 우연히 가출청소년을 만났다. “1998년, 수지 지하상가에서 15살짜리 애들 3명을 만났어요. 밥 먹었냐고 물어보니까 안 먹었다는 거다. 그래서 안나의 집에 밥먹으러 왔다. 처음엔 애들한테 밥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어느 날 다 먹고 ‘잘가’라고 인사를 하는데,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다시 춥고, 어둡고, 위험한 길로 돌아갈 거 아니냐.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 자립관을 만들게 됐다.” 독거노인에서 노숙자를 위해, 노숙자에서 가출청소년을 위해. 이 모든 일은 계획한 게 아니었다. 김 신부는 “어려운 사람과 같이 울면서, 보고 느껴 시작한 일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느낀 건 그저 ‘동정심’이 아니다. “사랑 받아 봤기 때문에 사랑할 줄 알고, 용서 받아 봤기 때문에 용서할 줄 안다. 나는 사랑도 많이 받아봤고, 많이 얻어서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먼저 받았기 때문에 주는 거다.” 김 신부는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한 필란트로피의 의미를 찾았던 것이다.
‘나부터’ 행동하는 것’
“우리 인생은 매일 매일 살면서 만들어가는 거다. 내가 살면서, 노력하면서, 사람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매일이 바뀔 수 있는 거다. 매일 새로운 시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당장이라도 필요하다면 내일이라도 나는 북한에 갈 거다. 누군가 해주길 바라면 안 된다. 나부터 시작하라.”
김하종
2018 APA 수상자 [올해의 필란트로피스트 상] 부문
김하종 신부는 이탈리아 출생으로 한국에 귀화한 한국인 성직자이다. 27년간 성남에서 독거노인과 노숙인, 위기 청소년 쉼터를 운영하며
소외된 이들의 친구, 안내자, 아버지 역할을 해오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하루 500여 명의 노숙인들의 한 끼 식사를 주 6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위한 자금의 60%를 모금으로 운영하며 살신성인의 사랑과 나눔, 봉사와 섬김을 아무 대가 없이 실천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필란트로피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