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삶의 기반을 만들다
  • 이동한
  • 2018 APA 수상자 [공적상] 부문
  • 2019.11.05
“장애를 겪은 저는 ‘어떻게 살지’가 언제나 고민이었습니다. 다른 장애인 분들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본능적으로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결심이 생겼습니다.”
Q :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사회복지법인 춘강을 운영하고 있는 이동한이다. 사회복지법인 춘강은 제주지역 최초의 장애인복지 전문법인으로서 1987년 설립되어 현재 장애인종합복지관 2개소와 직업재활시설 2개소 재활의원 1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Q : 어떤 계기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첫 시작 하였는가?
나는 2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혼자 일어설 수 없는 중증의 장애를 갖게 되었다. 어머님의 헌신적 사랑으로 7살이 돼서야 지팡이에 의지하여 첫걸음을 떼었고, 학창시절 대부분을 수술과 재활치료로 보내야 했다. 긴 재활치료 속에서 나 자신에게 던진 화두는 “어머님이 안 계시면 어떻게 살지?”였다. 그리고 치료가 끝나자 바로 경제적 자립을 위한 준비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제주도 최초 계량기사가 되었고, 그 바탕으로 제주도 최초로 수도미터 계량기수리소 개업, 제주도 최초 조경건설업 면허로 지금까지 조경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보조기에 의지하고 지팡이를 짚어야 걸을 수 있는 중증장애인이지만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뛰었다.
내 사업에 자신감이 생기자 다른 장애인들도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저들도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준다면 사회 참여하여 일꾼이 될 수 있음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직업재활시설을 꿈꾸었다. 그 당시 제주지역에 등록 지체장애인이 3천여명이었는데, 경제적으로 유복한 장애인 1,000명과 중증장애 혹은 학업의 길 등 직업재활을 선택하지 않을 장애인 1,000명을 제외한 1,000명의 장애인에게 직업재활의 기회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자라는 큰 그림을 그렸다. 10개의 직종에서 10명의 장애인에게 기술을 가르친 후 제주지역 10개의 읍 면에 보내어 그곳에서 다시 장애인을 가르치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돕는다면 제주지역 1,000명의 장애인이 직업재활에 성공하여 지역사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초석으로 춘강 장애인 근로 센터를 설립하였다.

춘강 장애인 근로 센터는 토지와 건축 그리고 기계장비 구입까지 모든 비용을 정부 지원 없이 제 사재로 충당하여 시작한 시설이다. 장애로 인한 아픔은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정부의 지원이 없다고 마냥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 삶의 화두가 ‘어떻게 살지?’였기에 장애인과 그 부모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해주는 것이 나의 평생 명제를 푸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법인은 직업재활, 의료재활, 사회재활의 전인적 서비스 체계를 갖춘 복지법인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Q : 남을 돕는 일에 활동기간이 오래되었다,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가장 큰 힘은 가족이다. 춘강을 설립하며 부지 6,800평과 건축비용으로 4억 상당의 현금을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금전적 출현을 할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언제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해주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머님과 아내, 아버지의 결정이 옳다고 지지해주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두 번째는 함께하는 직원들과 장애인들이 나의 힘의 원천이다. 저희 법인에는 30년 가까이 근무한 직원들이 여럿 있다. 대부분이 십 년 이상 장기근속을 한다. 장애인분들도 마찬가지이다. 직업재활시설인 춘강 장애인 근로 센터에는 20년 이상 근무한 장애인분들이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분들이 장애를 극복하여 일을 배워 나가고, 집 장만을 하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을 보는 기쁨이 내 힘의 원천이다.

Q : 사회 활동을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일화는 무엇인가?
제주도 장애인 종합 복지 관장을 겸직하고 있을 때였다. 부모 상담 중에 서귀포시 거주하시는 어머님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며느리 하나 잘못 들였더니 병신 자식 낳은 것도 모자라 밭일 내팽개쳐 두고 아기 둘러 업고 복지관에만 가서 사니 집안 거덜 나게 생겼다며 시부모님이 역정을 내신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1997년 IMF가 시작되자, 더 미루면 기증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될지 모른다는 우리 가족의 합의로 토지를 2,000평 구매하여 서귀포복지관 건립 조건으로 1,000평을 서귀포시에 무상 증여하고 그 옆에 직업재활시설을 개원하여 장애인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였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 직원들이 사업도 어려운데 어떻게 버티려고 하느냐며 만류도 많이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용기를 낸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Q : APA 수상 이후 변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APA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기뻤던 것은 이 상이 비영리활동가 100인이 모여 준 상이라는 점이었다. 나에게는 가족이 있고 함께 해준 직원들과 장애인 가족들이 있었지만, 사회복지의 길은 언제나 외로운 길이었다. 수상식장에서 많은 분을 뵈며, 좋은 벗들이 많아졌다는 든든함을 느끼곤 했다. 지금은 함께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비영리 활동가분들을 지지해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많아졌다.

Q : APA는 어떤 의미 인가?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하지만 나 자신이 현장 활동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와 같이 장애를 가진 분들과 함께 건강한 미래를 향하여 사회 속으로 오늘도 걸어가고 있다. 나에게 APA 수상은 그 사명을 알고 끝까지 현장 활동가로 제 자리를 지켜내야 겠다는 굳센 다짐의 디딤돌이 되었다.

Q : 마지막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
한글을 어머님한테서 배웠는데, 불심이 돈독한 어머님 영향으로 글을 깨치고 처음 읽은 글이 회심곡이었다. 어릴 적,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겠지만 그 구절구절들이 제 머리 속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 태어난 것이 부처님의 은덕이고 부모님의 은혜라는 글귀는 중증장애의 몸이지만 나 자신을 폄하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늘 감사함을 품게 하였고, 효와 가족사랑 그리고 소외된 이웃을 도와주면 복을 받는다는 내용은 온전히 내 삶에 채색되었다.
무엇보다 항상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셨던 어머님의 삶을 지켜보며 자랐기에, 어머님의 교육 철학이셨던 ‘항상 남을 기쁘고 이롭게 하는 일을 하자’는 나의 신념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회복지사업은 물론 개인 사업을 하면서도 행함의 기준점이 되어 왔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의 하루하루도 힘들고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 뒤돌아보니 국가와 모든 분께 감사할 뿐이다. 여러분의 오늘도 힘드실 거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처하더라도 비관하지 말고 용기를 내시라. 작은 것에 항상 감사하고 극기의 노력을 가한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혹여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감사와 노력만으로도 여러분은 어느새 APA 수상자이다.
감사합니다.
이동한
2018 APA 수상자 [공적상] 부문
이동한 이사장은 1987년 11월, 사회복지법인 춘강을 설립하여 제주도 내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근로센터, 직업재활시설, 재활의원 등을 운영해왔다. 2003년부터 꾸준히 어려운 이웃돕기 활동을 해왔고
2012년 6월에는 3억 원을 제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며 도내 고액기부자 클럽 활성화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