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으로서 좋은 일을 한다는 소박한 마음
  • 故백수남
  • 2017 APA 수상자 [공적상] 부문
  • 2019.12.09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양재기술을 가르치며 ‘은성원’의 가장 나이 많은 가족으로 불우여성과 더불어 살다가 하늘의 부름을 받는 것이 유일한 소망”
“할머니가 이화고녀(이화여고)를 나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이다. 30대에 홀로 된 후 종로에서 양장점을 운영해 큰돈을 벌었다. 1953년 서울 영등포 신길동 자리에 할머니 세례명을 딴 데레사 모자원을 짓고 자선 사업을 했다. 처음에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와 엄마들을 위한 모자복지 사업을 벌였다. 산업화 시대인 1960년대에는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나이 어린 여성들이 윤락에 빠지지 않도록 이·미용, 양재, 가정부 교육 같은 직업 훈련을 시켰다. 76년에 사회복지법인 은성원이 됐다.”
“할머니가 이화고녀(이화여고)를 나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이다. 30대에 홀로 된 후 종로에서 양장점을 운영해 큰돈을 벌었다. 1953년 서울 영등포 신길동 자리에 할머니 세례명을 딴 데레사 모자원을 짓고 자선 사업을 했다. 처음에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와 엄마들을 위한 모자복지 사업을 벌였다. 산업화 시대인 1960년대에는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나이 어린 여성들이 윤락에 빠지지 않도록 이·미용, 양재, 가정부 교육 같은 직업 훈련을 시켰다. 76년에 사회복지법인 은성원이 됐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상처입은 여성, 가난한 여성, 소외된 여성들이 그 상처와 가난을 오히려 삶의 자산으로 만들고 그 자산을 받침돌로 삼아 존엄하고 아름다운 삶의 건축물을 쌓아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복지법인 WING(Women Initiative Networking Growing) 최정은 대표(공적상 대리수상)의 말이다.
일제하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넉넉한 여건속에서 일본으로 유학, 디자이너 공부까지 마쳤던 백수남 원장은 43년 해방 2년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여성의 사회참여, 특히 남편을 잃은 여성으로서 사회활동은 꿈도 꿀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29세의 젊은 나이로 양장점을 열고, 2남 1녀를 키우며 주위의 질시와 호기심을 참고 이겨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10년 동안 양장점 경영에 매달렸던 백수남 여사는 전쟁이 끝나고 급증한 전쟁 미망인들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공감하여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피난당시인 52년, 이웃으로 눈을 돌리면서 그들의 아픔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백수남 원장은 그 동안 모았던 사재를 털어 지금의 WING이 위치한 서울 신길동일대의 대지와 가옥을 매입하고 23세대의 미망인 가족들을 맞아들였다. 이렇게 첫발을 디딘 「데레사모자원」은 12년동안 많은 이들이 자활해나가는 중간 기착지가 됐고,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65년에는 「재단법인 은성원」으로 변신하면서 불우여성의 직업보도활동 기관이 되었다. 이어 그는 76년에는 「은성원」을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 보다 깊이있는 사회사업을 목표로 삼기에 이르러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불우여성은 물론 일반주부들까지 폭넓게 공부할수있도록 하였다.
85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는 “한 사람으로서 좋은 일을 한다는 소박한 마음, 또한 남보다 돈이나 지식, 기술을 더 많이 가진데 대한 감사의 보답으로 일을 시작했다”는 그. “여성을 위한 복지사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작, 오히려 배우는 입장이었다”며 겸손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한창 자녀들이 사춘기였을 때 불우여성들의 신변보호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기까지 했던 백수남원장은 “무조건 사랑을 주면 아무리 나쁜 마음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작고 전까지 은성원을 거쳐간 이들로부터 스스럼없이 ‘할머니’로 불렸다. ‘부녀복지사업의 길로 인도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말하는 백수남 할머니는 71세 당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양재기술을 가르치며 ‘은성원’의 가장 나이 많은 가족으로 불우여성과 더불어 살다가 하늘의 부름을 받는것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했다.
故백수남
2017 APA 수상자 [공적상] 부문
故백수남 님은 30대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 후 1953년 데레사모자원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자선사업을 시작했다. 싱글맘 (전쟁 미망인, 비혼모, 사별 등)과 그 아이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1997년 소천하실 때까지 40년 이상을 헌신했다. 2남 1녀를 두었으며 돌아가신 후 큰 손녀(최주찬의 장녀 최정은)가 물려받아 사회복지법인 윙(W-ing)으로 개칭하여 성매매여성, 비혼모 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