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권운동가
  • 이금연
  • 2017 APA 수상자 [여성 필란트로피스트] 부문
  • 2019.12.09
“그거에요, 제가 하는 일은 그저 연결일 뿐이죠.”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금연 활동가는 살면서도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지금 그의 생활이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이 무엇일까 하는 근원적인 생각 때문일까? 대안적 삶을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를 염원하는 이들이면 누구나 다 하게 되는 고민일 텐데, 그는 실존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나 홀로’ 방식을 선택하였다고 말한다.
그가 네팔에 도착한 지 열흘 만에 지진이 발생하여 긴급 구호를 시작했고, 그 이후 피해 지역을 찾아다니며 구호물자를 배포해야 했다. 몇 개월간은 현장을 찾아 가는 구호 활동을, 이후엔 깨진 학교들을 복구하거나 새로 짓는 일을 하게 되어 임시 거처로 삼았던 피정 집 하숙 생활이 자꾸 연장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어느덧 일 년 반을 넘겼고 지진관련 활동을 하다 보니 ‘내가 왜 네팔로 오게 되었지?’와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한꺼번에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음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권운동가다. 1987년 국내 이주노동자의 인권운동을 시작해 그 때 만난 이주노동자들과의 인연으로 2000년대부터 네팔의 한센병 및 불가촉천민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어색해하며, 과거의 이금연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그는 2000년 초기부터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을 지원하였으며 2005년에는 노동하는 어린이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다가 돌아간 활동가들이 노동하는 어린이들을 구출하고 학교에 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계기로 2006년부터 장학금 지원을 시작하였다.
그는 2005년에 있었던 기후 변화로 인한 갑작스런 한파 때 긴급구호기금을 모아 2005년 12월에 다딩(Dhading) 지역 마하데브베시(Mahadevebesi)라는 곳에 가서 300가정의 노동자 가족들에게 의류와 담요를 지원한 것이 계기로 하여 네팔을 지속적으로 방문 중이다. 처음부터 학교와 어린이들에게 집중했다. 함께 지원해주시고 관심 가지셨던 사람들을 위해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나누면 젊은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책도 펴낸 그. 바로 [네팔의 아이들과 학교 이야기-히말라야에서 온 편지]라는 책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연결’이라고 표현한다. “제가 어떤 일을 한다는 건 도움을 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필요한 곳으로 연결한다는 의미에요. 그거에요, 제가 하는 일은 그저 연결일 뿐이죠.”

그가 보기에 요즈음 일이라 함은 돈을 낸 사람이 한 건지, 연결한 사람이 한 건지, 학교를 지은 사람이 한 건지, 아니면 거기서 조직한 사람이 한 건지 알기가 힘들다. 정말 모두가 합심해야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그 일들은 모두가 함께 하는 거고 공동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대인 것 같고, 공동선의 원리, 인간존엄성의 원리, 참여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이 원리들이 활동의 근간이자 지침이다.
그의 일들은 모두 연결이 되어 시작이 된 일이다. 후원자들은 우선 그의 지인들이 많다. 또 지인들이 전해주는 소식을 듣고 후원자가 되는 모르는 분들도 있다. 장학재단, 교회 여러 작은 기금들에서도 도움을 받고 있다.
이금연
2017 APA 수상자 [여성 필란트로피스트] 부문
이금연 님은 ‘전희생, 진애인, 상희락’을 기본 정신으로 하는 국제가톨릭형제회(AFI) 소속으로 1986년부터 이주와 노동을 주제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이래 사회교육과 여러 분야의 복지활동에 투신하여 왔다. 특히 1992년 안양근로자회관에서 국내 이주노동자들에게 상담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97년 같은 기관 책임자로 이주노동센터와 쉼터를 설립하였고, 그곳에서 만난 네팔 노동자들과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2000년부터 현재까지 네팔을 정기적으로 방문, 학교 지원과 장학 지원을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