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디아스포라’를 말하다
  • 김숙임
  • 2018 APA 수상자 [여성 필란트로피스트] 부문
  • 2019.12.09
“결국 핵심은 대화와 소통입니다.”
1990년대 남북여성 토론회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방위비 삭감을 위한 연대모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6·15여성본부’ 등 여성 평화운동의 현장에서 평화군축운동의 기틀을 닦아온 김숙임 조각보 대표. 지난 200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후보로도 이름을 올렸던 그는 조각보의 비전을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여성’을 키워드로 꼽는다.
그는 2007년까지 일했던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창립 무렵을 떠올린다. 1990년대 중후반 무렵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탈북자가 급증하였고 마침 창립 시점과 맞아떨어져 단체에서 탈북여성 실태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 때 만난 여성들과 ‘진달래무궁화’라는 이름의 남북여성 월례 모임을 만들었다. 그때는 전체 탈북자가 90여명 수준이라 매달 모이는 여성의 숫자가 3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지금과 비교하면 아주 소박한 규모다.
그러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이루어지면서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에서도 남북여성교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당시 북한 측에서 탈북여성과 계속 관계한다면 교류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피력해 진달래무궁화 모임은 정리하게 되었다. 당시 그의 은사님이자 여성평화운동의 상징이셨던 고(故) 이우정 선생께서 한국에 와 있는 이 소수의 여성들도 포용하지 못하면서 남북여성교류를 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와중 김숙임 대표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가 남북여성교류의 창구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제한적인 조건에서나마 행사도 열고 활동도 많이 했는데, 심적으로 아주 힘든 기간으로 기억한다. 가슴에 대못이 박힌 기분, 그래도 탈북여성들과 인간적 교류까지 끊긴 건 아니어서 나중에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활동을 정리하면서 그들과 새로운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동포 조선족도 자연스럽게 합류하면서 조각보가 출범하였다.
“북한 출신뿐만 아니라 조선족 다문화가정 출신, 분쟁지역 여성까지 다 포함해 함께 가는 운동을 꿈꿉니다. 이젠 국가의 경계를 넘어 초국가적으로 여성평화운동을 펼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임에선 기지촌 여성들을 지원하는 두레방이나 이주 여성들을 돕는 코시안의 집, 이슬람권에서 작은 도서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매진피스 등 다양한 커뮤니티와도 만나고 있는데, 결국 핵심은 대화와 소통입니다.”
경험상 평화에 대한 그의 접근은 상당히 신중하다. 특히 흔히 통칭되는 ‘탈북’이나 ‘북한 이탈’ 등의 배제적 용어가 사라졌으면 한다. 대신 ‘북한 출신’ 정도면 적당하지 않냐는 의견이다. 한국전쟁 당시 삼촌이 군인으로 전사하고 외삼촌 세 명 모두 전쟁 중 사망한 가족사로 어릴 때부터 할머니, 외숙모에게서 전쟁의 상흔을 익히 보아온 그는 “6·25로 4~5가구 중 1가구꼴로 사상자가 나는 등 전쟁의 트라우마가 강한 이 땅에서 전쟁의 상흔을 아직도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은 건강한 삶을 방해하는 치명적 요소”라고 안타까워한다.
“진정한 평화란 궁극적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 아니겠어요? 남북 여성 모임인 진달래무궁화모임을 통해 음식 얘기부터 부부싸움, 이혼 등 실제 여성들의 삶을 주제로 얘기하고 있어요. 가부장제와 얽힌 여성의 문제는 참 공통점이 많지만, 한편에선 남북 여성 모두 의식의 진전으로 주도적인 결혼생활을 하려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대화를 통해 자연스레 남녀 간 문제가 전체 사회문제로 연결되고, 대안도 제안하죠.”

2011년 8월 5일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모습을 드러낸 ‘조각보’는 누구나 즐겁고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일상 속 평화통일운동을 지향한다. 발족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지난해 11월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태에 대한 충격을 연말 여성 송년모임에서 토로하면서부터다.

그는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평화운동, 통일운동, 여성운동 모두에서 중요한 큰 줄기, 더 많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슈라 생각한다. 평화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별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처럼, 코리안 디아스포라 차원의 운동도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규모를 보자면 700만 동포 중에 414만명이 유라시아, 동북아 동포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이 사람들에게 한국 국적을 잘 내주지 않고, 일반 시민들의 인식도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한국 내 외국인이 160만에서 180만 정도인데 그중 80만에서 100만명 사이가 이주동포다. 분명 소수자이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소수자가 아니기한 이들이 평화통일운동에서 얼마나 주체적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 한반도 평화의 맥락이 달라진다고 그는 믿는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에피소드도 많고 잊지 못할 일들도 많다는 그. 남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다 보니 문화적 차이로 인한 해프닝도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 온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 중 남편이 때리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여자는 당연히 맞는 것으로 알다가 남한에 와보니 이것이 가정폭력이라는 것을 알고 헤어졌다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서 자기의 삶을 이해하고 여성으로서 당당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하시죠. 사소하게는 탈북 여성들이 프라이팬을 보고 때가 낀 것으로 알고 철수세미로 박박 밀어서 코팅을 하얗게 벗겨놨다는 식의 이야기도 들었죠.” 차이와 다름을 실감하는 와중에도 그에게는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기회였다고 한다. 북한 이외에도 사할린, 우즈베키스탄, 일본 등을 다니면서 이주동포들의 친척도 만나고 그 가족과도 함께 지내면서 이해도를 높였다.
김숙임
2018 APA 수상자 [여성 필란트로피스트] 부문
2011년 8월에 조각보를 창립한 김숙임 이사장. 조각 조각 난 헝겊을 이어 만든 보자기를 뜻하는 조각보는 한민족여성들이 아울러 만든 평화 통일 운동단체이다. 소수의 여성단체 대표들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활동과 소식을 참여 할 수 있는 방법을 항상 고민하던 김숙임 이사장은 통일독일의 ‘괴델리츠 대화모델’을 찾아냈고 이를 ‘다시 만난 코리안 여성들의 삶 이야기’로 재창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