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필란트로피스트 수상자]'길거리'를 사랑하는 사람,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

작성자
asiapa
작성일
2018-08-10 20:18
조회
10

길거리’를 사랑하는 사람,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
박지영 기자 kitty2988@naver.com

“26년째 똑같은 생활 하고 있어요. APA 상 받고 와서도 똑같이 일했어요. 안나의 집 와서 식사 준비하고, 같이 밥 먹고, 뒷정리하고. ‘신부님 참 변함없이 살아왔다’는 얘기 듣고 싶어요.

아침 5시 기상, 아침 기도, 식사 준비, 뒷정리, 행정일, 오후 5시 아지트 활동. 그는 매일 반복 되는 자신의 일상을 “인간으로는 참 재미없는 인생”이라고 평가했다. 오후 2시, 성남 안나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한참 급식소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신부의 상징인 사제복 대신 평상복을 입은 그의 모습에서 인생의 재미보다 찾기 힘든 인생의 ‘의미’가 담겨있는 듯 했다.

“사실 상을 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되게 놀랐어요. 저는 그냥 주방일 하는 사람이에요. 전혀 훌륭하거나 특별하지 않죠.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매일 주방에서 일해요. APA 수상은 저한테 어떤 증표 같았어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 ‘이 생활이 의미가 있을까’ 싶을 때도 많죠. 가는 길이 맞다고 인정받은 기분이에요. 예수님께서 ‘잘하고 있다’고 해주신 것 같죠.”

다행히 후원도 많이 늘었다. 안나의 집은 정부보조금 40%, 후원금 60%으로 운영된다. APA 수상 이후 후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믿을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긴 덕분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후원금만으로 건물을 지었다. 곧 계약이 만료되는 안나의 집이 이사 갈 보금자리다.

- 원동력은 ‘목표’가 아닌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사랑’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30살 사제가 될 때까지 이탈리아에서 살았다. 학부 시절 동양철학을 배웠던 그에게 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가톨릭 신자들이 생겼던 한국이란 나라는 꽤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1991년, ‘달동네’였던 성남에 정착하게 됐다. 김 신부는 “달동네를 보는데,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는 느낌이 왔다”고 상기했다.

그렇게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인 ‘평화의 집’을 운영했다. 저녁에는 공부도 가르쳤다. ‘영어를 가르쳐 달라’던 아이가 한 명, 두 명 늘어 1994년에는 분당 영구임대아파트에 아예 공부방도 열었다. 그러다 1997년 IMF가 터졌다.

“그때 노숙자들이 진짜 많았어요. 근데 밥 주는 곳이 없었어요. 독거노인 급식소는 원칙적으로 못 들어가니까. 서울역에서 노숙자들 밥 주긴 했어요. 근데 전혀 인간답지 않았어요. 냉면 그릇에 밥, 국, 반찬... 아저씨들 창피해서 벽 바라보면서 숨어서 먹고 그랬어요. 앉지도 못하고, 밖에서.”

그렇게 그는 6년 간 운영한 평화의 집을 정리하고 노숙인들을 위한 급식소인 ‘안나의 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결정이었다. 김 신부는 “정말 급한 상황이고,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그저 인간답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결정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 결정에 목적은 없었다. 그저 위대한 존재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밖에는.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나라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데, 제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어요? 예수님이 나한테 맡기신 사랑하는 일, 그걸 실천하는 겁니다.”

- 받아봐야 줄 수 있다 … 무엇이든

안나의 집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한 달에 한번 일찍 일어나 샌드위치와 우유를 챙겨 노숙인을 직접 방문하러 다녔다. ‘가출’이라는 단어도 몰랐던 때, 우연히 가출청소년을 만났다.

“1998년, 수지 지하상가에서 15살짜리 애들 3명을 만났어요. 밥 먹었냐고 물어보니까 안 먹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안나의 집에 밥먹으러 왔어요. 처음엔 애들한테 밥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어느 날 다 먹고 ‘잘가’라고 인사를 하는데,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다시 춥고, 어둡고, 위험한 길로 돌아갈 거 아니에요. 그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 자립관을 만들게 됐어요.”

독거노인에서 노숙자를 위해, 노숙자에서 가출청소년을 위해. 이 모든 일은 계획한 게 아니었다. 김 신부는 “어려운 사람과 같이 울면서, 보고 느껴 시작한 일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느낀 건 그저 ‘동정심’이 아니다. “사랑 받아 봤기 때문에 사랑할 줄 알고, 용서 받아 봤기 때문에 용서할 줄 알아요. 저는 사랑도 많이 받아봤고, 많이 얻어서 교육도 받을 수 있었어요. 먼저 받았기 때문에 주는 거에요.” 김 신부는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한 필란트로피의 의미를 찾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하종 신부는 ‘나부터’ 행동하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 인생은 매일 매일 살면서 만들어가는 겁니다. 내가 살면서, 노력하면서, 사람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매일이 바뀔 수 있는 거에요. 매일 새로운 시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이라도 필요하다면 내일이라도 저는 북한에 갈 겁니다. 누군가 해주길 바라면 안 됩니다. 나부터 시작하세요.”